그때가 몇 살 때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꽤 더운 어느 여름이었다는 것 밖에. 그리고 훗날 생각해 보니, 그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때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나보다 네 살 어린 남동생 손을 잡고 그 곳으로 가고 있었다. 당시 살던 집에서 꽤 떨어진 곳이라 아이들이 걸어서 가기에는 너무 멀었고, 엄마에게 말했다면 아예 가지 못하게 할게 뻔했다. 엄마는 늘 내가 혼자 알아서 갈 수 있는 거리의 범위를 정해 주시곤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리소설을 붙들고 살며 탐정처럼 ‘용감한 어린이’의 모험을 꿈꾸던 나는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 익숙한 골목들을 지나 조금씩 낯선 동네가 나오기 시작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옆에서 같이 걷는 동생이 아직 멀었냐고 자꾸 물었지만, 나는 머릿속으로 여러 번 그렸던 지도를 기억해내려고 애를 쓰면서 걷느라 동생에게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드디어 익숙한 기찻길이 나왔다. 이제 조금만 가면 된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누나 쉬 마려워” 라며 울상을 짓는다. 동생이 울면 곤란해지므로 필사적으로 구석진 곳을 찾았다. 동생이 이렇게 귀찮게 할 걸 알면서도 데리고 나온 건 사실 혼자 가기가 조금은 두려웠기 때문으로 기억한다.
우리 동네엔 기찻길이 있었다.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는 않고 철길만 남아있었는데, 그 당시에 나는 기차가 다닐 것만 같은 생각에 기찻길을 건널 때면 긴장하곤 했다. 특히 그 날은 엄마가 없는데다가 어린 동생까지 내가 보호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찻길 앞에 서서 차라리 동생을 업고 건널까 고민을 했다.
“너 저기까지 누나랑 뛸 수 있겠어?”
“몰라. 넘어지면 어떡해?” 안 그래도 겁이 많은 앤데 눈에 근심이 가득했다. 할 수 없이 이제 제법 무거워진 동생을 업고 기찻길을 건넜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마치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제일 난관이었던 기찻길을 무사히 건너고 나니 안심이 되었지만, 다시 돌아갈 때를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가 나올 것이다. 날씨가 더운 데다가 긴장을 하면서 걸어서인지 내 손도 내 손을 잡은 동생 손도 땀으로 축축했다. 동생이 배고프다고 칭얼댈까봐 주머니에 초콜릿을 넣어왔는데 슬쩍 만져보니까 물렁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녹은 것 같았다. 기찻길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갔더니 낯익은 공터가 나왔다. 공터는 제법 컸고, 공터 주위는 철조망으로 되어있었다. 아마도 늦은 밤이었으면 상당히 무서웠을 만한 장소였겠다고 생각된다. 공터를 가로질러 가는 것이 지름길이었는데 마침 누가 철조망을 잘라 어린 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동생부터 들어가게 하고 뒤따라 들어갔다. 추리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모험을 하는 것 같아 흥분이 되었다. 공터를 지나자마자 나온 슈퍼를 지나 파출소 앞 찻길을 건너니 드디어 목적지인 ‘돌막 놀이터’가 나왔다. 돌로 만들어진 놀이 기구가 있는 놀이터라서 친구들 사이에서 ‘돌막 놀이터’ 라고 불렸다. 그 당시 우리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돌멩이를 ‘돌막’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놀이터 안에 있는 놀이기구들 중에서 특히 전체가 돌로 만들어진 미끄럼틀이 인기였다. 미끄럼틀 넓이가 다른 놀이터 미끄럼틀 보다 훨씬 넓어서 친구들과 나란히 내려갈 수 있었다. 가끔 같은 반 친구들과 놀러 왔었는데, 이번에는 동생한테 보여주고 ‘누나는 이런 데서 놀아’ 라며 잘난 척 하고 싶었나 보다. “봐 봐~ 여기가 돌막 놀이터야. 굉장하지?” 나는 들뜬 목소리로 동생에게 물었다. 그러나 동생은 “집엔 언제가?” 라며 관심이 하나도 없는 눈치였다. 동생 반응이 왜이리 시큰둥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내가 처음 이 놀이터를 발견했을 때는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는데… 나는 일부러 과장하며 “여기 되게 재미있는 곳이야. 누나랑 미끄럼틀 타보자!” 라고 분위기를 한껏 띄워봤으나 동생은 표정에서부터 흥미가 없었다.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지쳐서 일까? 나만 혼자 미끄럼틀을 내려와보고 철봉에 매달려도 봤다. 분명히 예전엔 이곳이 특별한 곳이었는데 왠지 나도 흥이 오르지 않는다. 주머니에서 녹을 대로 녹은 초콜릿을 꺼내 동생과 한입씩 먹었다. “이제 집에 갈래?” 라고 물으니 동생이 끄덕거렸다. 수돗가에서 동생 손을 닦아주고 나도 손을 씻고 땀을 닦았다. 이렇게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오는 것이 나에겐 큰 모험이었는데 잠시 있다 가려니까 좀 허무하기도 하고 동생의 어이없는 반응때문에 무안하기도 했지만, 엄마한테 혼나지 않으려면 5시 전까지 집에 도착하는게 좋긴 하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동생한테 서운한 마음에 ‘이번엔 기찻길에서 업어주지 말아야지’ 속으로 생각하면서 다시 왔던 길로 들어섰다. 다시 공터를 지나 기찻길을 건너고, 왔던 길을 머릿속에서 그리며 걸었다. 한참 걸어 동네 오빠들이 다니는 고등학교가 나왔다. 익숙한 풍경이 나오고 나서야 긴장이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어가니 바람도 솔솔 불어 땀을 말려줬다. 긴장하느라 동생 손을 너무 꽉 잡아서 손가락이 아팠다. 이제 손을 놔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드디어 골목 끝에 우리 집 대문이 보였다. 한 번은 울 것 같았던 동생이 다행히 한 번도 울지 않았다. 평소에 울보였기 때문에 각오를 단단히 했었는데 이제 제법 컸다고 울지 않은 건지 대견했다. 엄마한테 멀리 다녀온 것만 동생이 말하지 않으면 완벽하다고 생각했고, 동생에게 엄마한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다음에는 더 좋은 곳에 데려가 주겠다고 했다.
그 날 이후 또 동생을 데리고 멀리 간 적이 있는지 생각해봤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상하게도 그 날만 아주 또렷하게 각인이 되어있다. 그 날의 투명했던 저녁의 공기가, 축축했던 동생과 내 손의 촉감이, 솔솔 불었던 여름 저녁 바람의 냄새까지도.
나는 종종 이 날과 비슷한 꿈을 꾼다. 꿈이란 것이 늘 그렇듯 꿈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우리 집이 나오지 않는다. 주위가 깜깜해질 때까지 헤매고 다니는데도 우리 집을 찾을 수가 없다. 꿈에서도 그날처럼 여전히 손이 아플 만큼 동생 손을 꽉 잡고 걷는다. 그 불안한 감정이 마치 현실인 듯 고스란히 전해진다. 꿈에서 동생은 그 날의 모습 그대로인데 나만 어른이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