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yona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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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회화 live painting
 
 
오세원, 현민혜(씨알콜렉티브)
 
동시대의 빛을 품은 화사하고 생생한 인물의 모습은 자연스럽지만 다분히 인위적이다. 고성능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폰과 상상을 초월한 화려한 앱(app)의 마술을 통하면 자신의 모습은 만족수치에 한층 더 가까워진다. 이렇게 인위적이지만 생생한 이미지는 이미 너무 익숙하여 자연스런 이미지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 속에 혼재된 가상과 현실은 그의 작업 속에서 더욱더 모호함을 드러낸다. 3년 만에 공개되는 정고요나의 신작 페인팅 전시, 《필터링 filtering》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살아있는 [라이브한(live)] 개별자들을 그리는 회화 작가로서의 10년 이상의 오랜 고민과 실천을 드러낸다.
 
2021년 봄소식과 함께 파스텔 톤으로 화사한 이번 전시는 그동안 작가가 작업실에 쳐 박혀 몰입한 20여점의 페인팅 신작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그의 작업은 필터링 된 동시대의 도시인들의 스스로의 워너비(wannabes) 모습, 그리고 일종의 로망(roman)을 실현하는 삶의 패턴을 드러낸다. 여행과 사회적 접촉이 제한되고 부담스러워진 최근 상황에서, 더욱 짜릿해진 리조트에서의 휴식은 도시생활에 지친, 특히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에 쑤셔 박혀 있던 자아를 밖으로 끌어내어 보듬고, 동시에 타인에게 슬쩍 노출시키는 플렉스한(flex) 쾌감을 선사한다. 호텔방안에 들어와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간만에 페디큐어한(pedicure) 발가락을 꼬물거리며 부서지는 창밖을 바라보는 편안함과 아늑함을 카메라 셀피(selfies)에 담으면 그 순간만은 피로회복 강장제를 잔뜩 삼킨 자의 여유와 살짝 업 된 기분을 누리게 된다.( oil on canvas, 162.2x130.3cm, 2021) 그리고 수면과 하늘이 맞닿은 듯 한 스위밍 풀에 들어가 물을 흩뿌리며 첨벙거리거나(< 햇살 > oil on canvas, 162.2x130.3cm, 2020) 홀딱 벗은 나체로 밑바닥 가까이에 붙어 잠수하는, 도시탈출 자연인이 되는 자유를 누린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 > oil on canvas, 162.2x130.3cm, 2021) 살짝 벌어진 입술과 팬티라인 선명한 탱탱한 바디라인을 자랑하며 하루를 만끽하다, 저녁에는 촛불을 키고 멜랑콜리한 분위기에 빠진 센치멘탈한(sentimental) 나를 동행한 친구와 한 장씩 찍어 나눠가지면 휴가의 클라이맥스를 맞이한다.(< 전미래 >, oil on canvas, 145.5x97.0cm, 2021) 그리고 분위기에 맞게 살짝 보정한 뒤 SNS에 올려 높은 조회 수를 확인하면서 잠이 든다. 이러한 삶의 유희는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젊은 여성들이 바라는 또는 한번쯤 가져본 삶의 패턴이다. 작가는 최근 언택트 시대에 증폭된 가상으로 통하는 자기 최면화된 모호한 관계-욕망을 드러내고자 한다. 다만 이러한 현대인들의 욕망노출 방식의 패턴을 바로 마주하기위해서는 심각하고 진지함이란 편견과 편협한 가치등급 매기기에서 자유로움을 얻어야한다. 이렇게 정고요나는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필터링filtering’이란 행위를 통해 SNS 같은 사회적 네트워킹에 집착하는 현상 및 정서를 동시대 텍스트로 시각화한다.
이전 작품에서 라이브 카메라나 사진을 통해 사용자와 연결된 라이브드로잉으로 작가의 일방적이고 통제적 시선을 해체하고자 했다면, 《필터링 Filtering》에서 선보이는 신작은 적극적으로 SNS를 활용하여 동시대성을 드러내는 데에 집중한다. 개인의 브랜드화, 자기 PR이 강조되는 사회 구조 안에서 SNS의 활성화는 사회관계망을 견고히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작가는 멀리서 찾지 않았다. SNS로 만나게 되는 언택트 관계망의 존재들과의 관계맺음은 새로운 인맥을 형성하는데, 이러한 지인이 올리는 이미지 중에서 작업으로 옮길 것을 골랐다. 온라인상에 업로드 된, SNS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셀카와 같은 개인의 이미지를 선택하여 다시 필터링, 편집하고 화면으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관심과 함께 관계를 증명 받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과 이와 교차하는 타자의 시선을 중성적으로 그려낸다.
 
정고요나는 특히 자신의 일상을 사진처럼 기록하는 작업으로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2016년 개인전《기억의 목적》에서 처음 시도했던 < 라이브 캠 페인팅 Live Cam Painting > 시리즈는 CCTV, 웹캠, 셀프카메라 등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는 영상을 캔버스 혹은 OHP 필름 위에 프로젝션 하여 고정된 배경 위로 움직이는 인물들의 실루엣 변화를 실시간으로 그려내는 미디어 회화 작업이었다. 이는 쌍방향 소통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으로 일방적으로 통제된 회화적 결과물을 해체하려는 시도였다. 사회가 점점 디지털화 되고 인터넷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온라인을 통해 개인의 일상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관찰하는 현상에 관심을 둔 작가는 SNS에 업로드 된 가상 이미지가 내포한 동시대적 특성으로 자연스레 시선을 돌렸다.
 
SNS 활성화는 공적 공간에서 누구나 업로드 된 피사체의 사적이면서 조작된 이미지를 스파잉(spying) 할 수 있는 플랫폼을 열어주었다. 이로써 SNS를 통한 작가와 피사체와의 소통인 스파잉의 행위는 관음이라는 부정적 속성이 배제된 채 공공연히 수행과정을 거칠 수 있는 당위성을 획득하게 된다. 정고요나는 온라인 상에 업로드 된 이미지가 필터를 거치며 피사체 그 자체임과 동시에 타인을 의식한 되고 싶은(want to be) 혹은 보이고 싶은 선망의 이미지로 양가적 측면을 지니는 것을 포착한다. 정고요나는 자발적으로 타인과 공유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미지를 온라인상에서 선택한다. 각각의 이미지는 타자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하고 의도적으로 반영하여 ‘만들어 낸’ 개인적이지만 사적이지 않은 결과물이다. 개인에 의해 게재된 시각 이미지의 결과물은 ‘내가 어떻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지점에서 책략적으로 짜여 있지만 동시에 의도를 드러내길 원하지 않는, 애매모호함이 담긴 “교묘한 내숭”을 표방한다. 이러한 지극히 의도적으로 타자의 시선이라는 주관적인 검열을 거쳐 온라인상에 그리드로 넓게 펼쳐진 이미지들은 의식의 표면 아래 놓인 동시대의 삶의 방식과 이상향으로 귀결된다.
 
조정과 자체 검열의 기준을 통과하여 비로소 보이는 이미지는 ‘나’이면서 ‘내가 아닌’,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존재하는 이미지가 되어 가상과 실재 그리고 현실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지점을 형성하고, 여기에 작가의 ‘그리는’ 행위가 더해져 결국 객관적 텍스트로 치환된다. 즉 작가는 SNS 사진 같은 얇은 그리드로 플로팅(floating)하는 이미지를 서로 다른 시선을 드러내지 않는 붓질, 채도 낮은 냉랭한 감각으로 ‘그리는’ 행위로 수행함으로써 쌍방향으로 교차 편집된 동시대적 정서와 욕망을 읽어낸다. 이를 통해 급변한 언택트 시대에서의 회화적인 요소에 대한 예술적 탐구와 동시대적 실험을 시도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미지에 다시 한 번 필터를 덧씌워 화면으로 옮김으로써 “어쩌면 우리는 편집된 일상을 살고 온라인상에서 만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현대인의 삶에서 오는 고독함과 관계에 대한 욕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작가 노트에서)하는 의문을 품는다. 이로써 가상이 이미 우리 삶의 여기저기, 그리고 깊은 곳으로 들어와 현실이 채워줄 수 없는 위로와 자기만족, 그리고 향유를 주고 있음을 생각해보게 한다.
≪아주 사적인 절차 In my algorithm≫
 -감정 번역을 위한 프로토콜
  
  정수진(비평가)
빛이 스며든다. 창으로, 커튼을 비집고, 블라인드 틈새로, 손가락 사이로, 벽 너머로, 나뭇잎 위를 출렁이며··· 정고요나의 회화는 아주 사적인 순간들에 계속 빛을 비춘다. 마시다 만 음료, 다이어리 등이 올려져 있는 창가, 그림자만이 아른거리는 나무 선반, 헝클어진 옷가지가 올려져 있는 침대와 같은 누군가의 흔적. 식물, 꽃 등 분명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을 비인간적 존재. 또, 방 안에서 혼자 셔츠만 걸친 채 바닥을 응시하며 무릎을 감싸고 앉아있거나, 수영장의 일렁거리는 물 위에 누워, 장소를 가늠하기 어려운 회색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쌓인 공간에 서서, 혹은 우뚝 솟은 산봉우리들 사이 저 멀리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양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사색에 잠긴 듯한 여러 인물들까지. 이러한 지극히 개인적인 순간들은 작가가 SNS에 업로드 된 이미지들을 회화의 소재로 차용하고 변용한 것이다.
'리얼 라이브 페인팅(Real Live Painting)' 등의 작업을 통해 회화에 설치, 퍼포먼스 등의 다양한 장르를 끌어들이며 자신만의 작업 방식을 계속 확장시키고 있는 정고요나는 이번 개인전 ≪아주 사적인 절차 In my algorithm≫에서 회화에 다시 집중한다.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00개의 회화 작업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말했던 ‘푼크툼’이라는 현상이 떠오른다. 푼크툼[1]은 한 사람이 어떤 사진 이미지를 바라볼 때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마치 가슴을 찌르는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는 것을 뜻한다. 미술비평가 김주옥 역시 정고요나의 회화에 대해 ‘푼크툼’을 언급한 바 있는데, 바로 정고요나의 회화가 그런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2] 마치 회화 속 인물이나 인물이 남긴 사소한 그러나 소중한 흔적들을 통해 즉각적으로 거대한 친밀감이 형성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타인의 사적인 순간을 회화의 소재로 차용했기에 그런 것은 아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정고요나는 SNS이미지 속 타인의 기억, 감정, 경험을 회화로 ‘번역’한다. 감정사회학자 김신식은 ‘감정 번역’이란 정확한 언어로 정답의 감정을 맞춰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 주변에 존재하는 대상, 그리고 자신과 대상을 둘러싼 세계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설명한다. [3] 즉, 정고요나의 회화는 자신과 주변 세계를 헤아리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다.
 
정고요나는 감정 번역을 위해, SNS 알고리즘이라는 멈추지 않는 눈을 뜬 채, 유령—SNS이미지—들을 회화로 꽂아버린다. 작가이자 시인인 제시 달링(Jesse Darling)은 SNS 이미지가 계속 다른 시간대에서 출몰하게 되는 ‘유령’이라고 칭하는데, 여기서 ‘유령’이란 여러 시공간으로 분산되는 몸을 갖는 것을 뜻한다. 달링은 스크린을 통해 보게 되는 이미지 속 실제 시공간은 ‘유령’으로서 사실상 보는 이에게는 접근이 불가능한 일종의 갈망만이 남아있는 장소라고 말한다.[4] 몇 초 후 스크린을 쓸어 넘기면 이내 사라져버릴 SNS 이미지는 유령 혹은 좀비처럼 온라인 공간을 떠다니며 남아있는 갈망만을 또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한다. 정고요나는 이러한 온라인 세상 어딘가에서 계속 부유하고 출몰하며 끊임없는 시차를 발생시키는 유령, 즉 SNS이미지를 회화로서 붙잡는다. 작가는 그리는 과정에서, 예를 들어 빛을 제외한 모든 장소성을 삭제하거나 빛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실제 시공간을 주관적으로 변형시키고, 유화물감으로 천천히 채색하가는 과정에서 시간을 붙잡고 쌓아나가며 두께를 만든다. 손가락으로 터치함에도 접근할 수 없던 시공간을 물감들의 층으로 붙여나가며 촉각적 감각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회화로 꽂힌 사적인 순간들은 더 촉각적이며 더 친밀하다.
한편, 작가 자신의 이미지도 이러한 친밀감에 기여한다. < 네 시 >는 자화상으로, 작가 자신이 한창 작업 중인 듯한 책상 앞에 앉아 뼈마디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손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고, 그 뒤로는 창문과 나뭇가지가 햇빛에 비춰 그림자를 드리운다. 작가 자신을 감싸던 손은 
에서 대상과 교감하는 손짓으로 변화하고, 내부를 향한 시선은 < 아름다운 9월 >에서 외부를 향한 시선으로 바뀐다. 결국, 정고요나의 친밀한 회화는 작가 자신에게 있어 내부와 외부를 모두 돌아보게 하는 통로가 된다.

정고요나의 이번 개인전 제목인 “아주 사적인 절차”는 두 가지 의미를 담는다. 아주 사적인 절차節次—일을 치르는 데 거쳐야 하는 순서나 방법—로 SNS알고리즘을 이용해 타인의 개인적인 순간들을 회화로 가공하는 작가의 작업 방식을 뜻하기도 하고, 아주 사적인 절차切磋—옥이나 돌을 갈고 닦는다는 뜻으로 학문과 덕행을 닦음을 이르는 말—로 작업을 통한 감정 번역, 다시말해 작가의 작가 자신과 주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를 뜻하기도 한다.[5] 작가는 SNS이미지를 소재로 한 친밀한 회화를 통해  자신과 대상이 속해있는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프로토콜(protocol)—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1] 참조, Roland Barthes, Camera Lucida: Reflections on Photography (New York: Hill and Wang, 1981).
[2] 참조, 김주옥, 『한국의 동시대작가들이 가상을 이해하는 방식』, 출판사, 년도, 페이지 pp.
[3] 김신식, 『다소 곤란한 감정』, 출판사, 년도, 페이지 pp.
[4] Jesse Darling, “Intimacy Keynote,” Google Doc, June 2, 2015, https://docs.google.com/document/d/1LfaD6Zas5vhitkbzhLdSmyYj6pulwYjsfczOgO0FnFw/edit. 
[5] ‘절차’의 사전적 의미에 대해 네이버 국어사전을 참조했다. https://ko.dict.naver.com/.
WELL, THIS WORK (2)  : BLACK NOT B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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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원 (PAGEROOM8 디렉터)
▪ 전시 소개
PAGEROOM8(페이지룸8) [페이지룸에잇]은 9월 1일부터 9월 26일까지 정고요나(1973~)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이 작품 시리즈(WELL, THIS WORK)》라는 프로젝트 두 번째 전시로서 개인전 형식으로 진행된다. 작가의 작품 중 기획자의 시선에서 조명할 작품 1점을 선정하여 그 작품과 연관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작가의 작품 세계를 ‘키워드’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블랙아닌블랙 #BLACKNOTBLACK
정고요나 작가는 주로 유화로 그림을 그린다. 작가는 2016년 “기억의 목적”(아터테인) 개인전에서 〈합정동 골목길〉을 메인 작품으로 내세우며 블랙톤 작업을 선보였다. 주로 인적이 없는 놀이터, 골목길 등 밤의 풍경이나 인물과 사물을 등장시키며 빛과 그림자가 화면의 주요 연출을 이루는 장면을 개인전을 통해 일부 선보였다. 화면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블랙톤 색감은 붓질을 하기 전, 작가는 작품마다 다른 블랙톤의 온도감을 결정하고 유화 안료를 조색하여 표현한다. 이 블랙은 블랙이라고 명명된 물감만으로 표현이 되지 않기에 당시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근접한 색감을 색에 색을 더하여 빠른 시간 내에 만들어 낸다. ‘이 작품’ 시리즈의 메인 작품 〈변하지 않는 것〉(2021)은 조도를 최대한 낮춘 전시장(2017년 리움, 올라퍼 엘리아슨 개인전)에서 인공조명과 수증기를 이용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의 분위기와 당시의 온도를 블랙톤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기억화이트밸런스 #WB/MEMORY
작가가 표현하는 블랙톤은 쉽게 차갑고 따뜻한 블랙으로 나뉜다. 카메라가 화이트밸런스를 자동으로 색을 조정하듯이, 작가의 시각은 어떤 대상을 직관할 때 당시의 기억과 온도 그리고 분위기 등 공감각적인 감각까지도 끌어들이며 블랙의 다양한 인상을 끄집어낸다. 특히 ‘어둠’과 ‘밤’에 대한 인상은 블랙을 어떤 색과 조색하는지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그리고 이 기준은 무엇보다 작가가 기억하는 블랙의 거점에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미지들의 대부분은 작가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SNS에서 채집하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 것으로서 이미지를 접한 그 순간에 느낀 누군가의 이중 경험을 통해 전해진다. 또 작품을 보는 관객은 작가가 경험했으리라 여긴 이미지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시킨다. 이 과정에서 블랙 컬러는 기억을 소환하고 연결하는 등 간접 경험에 대한 인상을 실존적으로 표현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독연대 #SOLITUDEBAND
정고요나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SNS에서 채집한 이미지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작가 앞에서 포즈를 취한 것이 아닌 주로 셀피 혹은 간접셀피로서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는 스냅샷이기도 하다. 정고요나 작가가 블랙톤으로 표현하는 인물은 작가 자신도 SNS 상에 팔로워로서 관계망에 참여한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 혼자” 살면서 고독의 미학을 찾는 현대인들이 간접적인 방식으로 연대 맺는 단면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피드가 불특정 다수의 지지를 얻으며 공유되듯이 작가의 시선에서 기념하듯 그린 작가의 작품은 누군가의 컬렉션이 되어 작가만의 연대를 파생시켜 나간다.
이번 전시 정고요나 작가의 “BLACK NOT BLACK”은 작가가 구현하는 블랙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작가만의 시그니처 컬러톤 ‘블랙’에 주목하는 이유는 인물과 풍경에서 작품의 아우라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SNS 사진과 작가가 직접 찍은 이미지들 사이의 간극이 없을 정도로 구현하고 있는 지점에서 작가의 상상력과 물성을 다루는 역량을 또한 가늠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간접적으로 받아들인 타인의 SNS 이미지를 오직 ‘회화’를 통해 생생한 시공간으로 전환시킨다는 점이 주목할 점이다.

< 라이브 캠 페인팅 네번째 이야기: 대-화(對-畵, Dialogue with painting) > 
 
확장된 라이브, 대화對話 : 對-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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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민(독립 큐레이터)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가상을 중심으로 실재한다. ‘좋아요’의 수나 영상의 ‘뷰’ 횟수는 측정치로서 우리에게 객관적인 평가로 다가오기에 그 영향력이 적지 않다. 자신의 모습, 일상, 동선이 모두 드러나는 데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던 것도 옛말이 되었다. 내가 모르는 불특정다수가 나의 생김새, 하는 일, 취향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정보를 스스로 드러내고 이 내용은 데이터화 되어 마케팅, 리서치, 사회현상의 분석자료가 된다. 여기까지는 대체로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의 통제 하에 편집이나 가공 후 게시된다. 그래서 정고요나 작가가 2016년 처음 ‘라이브 페인팅live painting’에서 어딘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의 생활을 그린다고 했을 때 무척 놀랐다. 범죄의 일환으로 집 안에 소위 몰카라는 것이 설치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집 안을 웹에 실시간으로 노출하는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개인을 온라인상에 노출하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어 ‘크리에이터creator’라는 이름으로 개인컨텐츠를 통해 사회적 활동을 하는 이들이 각광받기 시작했고, ‘라이브live’라는 타이틀로 개인은 원하는 시간 아무때고 일인방송을 공지하고 업로드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서술하는 것이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일반화 된 요즘이기에 작가가 이러한 컨텐츠를 회화로 전환하는 작업이 새롭다. 고정된 배경을 캔버스에 그려 넣고 영상의 주인공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시간에 따라 선으로 추적해 그린다. 이 과정을 현장에서 퍼포먼스로 진행하기 때문에 쭉 지켜본다면 우리는 실시간으로 작품이 진행되는 모습을 따라 그들의 움직임이 중첩되는 것을 볼 수 있고, 작품이 마무리 되었을 때 작업이 진행된 동안 그들의 주된 동선이 어떠했는지를 한 번에 볼 수 있다. 소파에 주로 누워서 쉬었다던지, 뒤편의 부엌과 냉장고를 오갔거나 특정 문으로 출입했다는 내용도 알 수 있게 된다. 정해진 구도를 화면에 넣기로 하고, 포착된 장면을 완성하는 일반적인 회화의 속성 위에 시간이 더해진 것이다. 이는 라이브 캠live cam이라는 매체가 보여주는 내용을 형식상 ‘아크릴화+크로키’로 담은 것인데 이 지점에서 나는 문득 인상파를 떠올렸다.
19세기 프랑스의 실증주의와 사실주의를 반영, 빛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한 화면에 그린 인상파는 큰 시선에서 볼 때 사회현상을 작품제작의 동력으로 삼아, 실제로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색을 하나의 작품에 담았다. 순간이나 정지된 모습 즉, 시각時刻이 아니라 시간時間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인상파와 작가의 라이브 페인팅은 닮았다. 반면 여러 번의 포착이 형태의 완성과 색채의 특징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움직임을 노출하는 선 중심이라는 것이 대별되는 점이며, 실시간으로 생활하는 대상을 그리는 과정이 다시 실시간으로 전시의 한 요소로 작용하는 현장성이 정고요나 작가만의 특징이라 하겠다.
 
이제 네 번째 라이브 캠 페인팅이 된 이번 전시에서는 ‘라이브’라는 의미의 축이 다소 이동했다. 전시 전이나 후에 계속해서 익명이었던 대상은 사라지고 작가와 마주앉은 사람이 화면의 주인공이 되는 이번 전시는 ‘실시간으로 그리는’ 라이브 페인팅이 아니다. 가상이, 일방적인 송출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 마주 앉아 실시간으로 나눈 이야기를 받아들인 작가가 배경 캔버스에 투사되는 인물에 대화의 기억과 감정을 담아 선과 색으로 충첩해 표현한다. 여기에서 ‘라이브’는 뜻으로 보자면 ‘살아있는, 유효한’에 가깝다고 할 수 있고 형식으로 보자면 ‘전시 중에 작품이 시작-완성-게시되는’ 것이다.
퍼포먼스는 일반적으로 전시의 주제를 반영해 퍼포머가 자신이 구성한 형식으로 현장에서 선보이거나 관람자와 함께 완성한 후 기록영상이 상영되거나 혹은 그 시간 외에는 전시장에서 볼 수 없어 그 자체가 라이브의 속성을 지닌다. 때문에 비디오의 형식으로 남게 되는데, 고요나 작가의 이번 전시에서 퍼포먼스는 녹화되자마자 회화로 전환된다. 이 전 과정 전체를 하나의 ‘실시간 프로젝트’로 본다면 기존의 ‘라이브’의 의미는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주하고 대화하던 퍼포머에서 순간 화가가 되어 자신의 회화적 감각으로 그린 그림은 참여자의 실제 모습이 아니지만 참여자다. 이 희한한 사실에 조금 놀라면서 회화를 그려온 작가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참여자로서 이 그림이 ‘살아있는, 유효한’이라는 뜻의 라이브 페인팅으로 느껴졌다.
이번 전시에서 영상은 ‘대화’의 내용을 보여주고, ‘대-화’와 짝을 이루어 말 그대로 혼합매체mixed media가 된다. 전시 전체는 하나의 캡션으로 정의될 수 있다.
 
““< 대-화(對-畵, Dialogue with painting) >, 혼합매체, 가변크기, 스페이스원, 2018””
 
사람을 만나고 요즘의 관심사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고 그 시간을 영상으로, 회화로 남기는 전 과정이 담긴 이 전시를 보면서 결국 사생활과 생각을 게시하고 내보내는 행위는 동시에 더 많은 사람과 무언가를 나누고 싶다는 욕구의 표출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무언가는 어쩌면 함께 있는 공간이 가진 공기, 인상, 서로에게 가 닿는 파장, 기억의 공유 같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번 전시가 살아있다면 누군가가 필요한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입체적으로 채워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무엇이든 예술이 되는 과정에서 정의하기 힘든 발효 같은 현상이 작용하듯 단순한 대화와 기록이 아니라 작품에 요청되는 관람자나 참여자의 바람을 포함한 작품으로서 라이브의 확장이다.
 
작가의 활동을 계속 지켜보면서, 우리가 이제는 그저 평범한 일처럼 타인의 삶을 보지만남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직접 보는 일이 있으리라 상상하지 못했던 때가 있고 모르는 사람과 가상의 영역에서 친구가 되어 삶의 어느 단면에서 관계를 형성하게 될 줄 모르던 때처럼 지금, 그 일상과 대화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회화로 그려질 줄 몰랐던 때가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장르에 갇히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작가의 확장된 다음 라이브를 또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