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의 빛을 품은 화사하고 생생한 인물의 모습은 자연스럽지만 다분히 인위적이다. 고성능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폰과 상상을 초월한 화려한 앱(app)의 마술을 통하면 자신의 모습은 만족수치에 한층 더 가까워진다. 이렇게 인위적이지만 생생한 이미지는 이미 너무 익숙하여 자연스런 이미지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 속에 혼재된 가상과 현실은 그의 작업 속에서 더욱더 모호함을 드러낸다. 3년 만에 공개되는 정고요나의 신작 페인팅 전시, 《필터링 filtering》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살아있는 [라이브한(live)] 개별자들을 그리는 회화 작가로서의 10년 이상의 오랜 고민과 실천을 드러낸다.
2021년 봄소식과 함께 파스텔 톤으로 화사한 이번 전시는 그동안 작가가 작업실에 쳐 박혀 몰입한 20여점의 페인팅 신작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그의 작업은 필터링 된 동시대의 도시인들의 스스로의 워너비(wannabes) 모습, 그리고 일종의 로망(roman)을 실현하는 삶의 패턴을 드러낸다. 여행과 사회적 접촉이 제한되고 부담스러워진 최근 상황에서, 더욱 짜릿해진 리조트에서의 휴식은 도시생활에 지친, 특히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에 쑤셔 박혀 있던 자아를 밖으로 끌어내어 보듬고, 동시에 타인에게 슬쩍 노출시키는 플렉스한(flex) 쾌감을 선사한다. 호텔방안에 들어와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간만에 페디큐어한(pedicure) 발가락을 꼬물거리며 부서지는 창밖을 바라보는 편안함과 아늑함을 카메라 셀피(selfies)에 담으면 그 순간만은 피로회복 강장제를 잔뜩 삼킨 자의 여유와 살짝 업 된 기분을 누리게 된다.( oil on canvas, 162.2x130.3cm, 2021) 그리고 수면과 하늘이 맞닿은 듯 한 스위밍 풀에 들어가 물을 흩뿌리며 첨벙거리거나(< 햇살 > oil on canvas, 162.2x130.3cm, 2020) 홀딱 벗은 나체로 밑바닥 가까이에 붙어 잠수하는, 도시탈출 자연인이 되는 자유를 누린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 > oil on canvas, 162.2x130.3cm, 2021) 살짝 벌어진 입술과 팬티라인 선명한 탱탱한 바디라인을 자랑하며 하루를 만끽하다, 저녁에는 촛불을 키고 멜랑콜리한 분위기에 빠진 센치멘탈한(sentimental) 나를 동행한 친구와 한 장씩 찍어 나눠가지면 휴가의 클라이맥스를 맞이한다.(< 전미래 >, oil on canvas, 145.5x97.0cm, 2021) 그리고 분위기에 맞게 살짝 보정한 뒤 SNS에 올려 높은 조회 수를 확인하면서 잠이 든다. 이러한 삶의 유희는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젊은 여성들이 바라는 또는 한번쯤 가져본 삶의 패턴이다. 작가는 최근 언택트 시대에 증폭된 가상으로 통하는 자기 최면화된 모호한 관계-욕망을 드러내고자 한다. 다만 이러한 현대인들의 욕망노출 방식의 패턴을 바로 마주하기위해서는 심각하고 진지함이란 편견과 편협한 가치등급 매기기에서 자유로움을 얻어야한다. 이렇게 정고요나는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필터링filtering’이란 행위를 통해 SNS 같은 사회적 네트워킹에 집착하는 현상 및 정서를 동시대 텍스트로 시각화한다.
이전 작품에서 라이브 카메라나 사진을 통해 사용자와 연결된 라이브드로잉으로 작가의 일방적이고 통제적 시선을 해체하고자 했다면, 《필터링 Filtering》에서 선보이는 신작은 적극적으로 SNS를 활용하여 동시대성을 드러내는 데에 집중한다. 개인의 브랜드화, 자기 PR이 강조되는 사회 구조 안에서 SNS의 활성화는 사회관계망을 견고히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작가는 멀리서 찾지 않았다. SNS로 만나게 되는 언택트 관계망의 존재들과의 관계맺음은 새로운 인맥을 형성하는데, 이러한 지인이 올리는 이미지 중에서 작업으로 옮길 것을 골랐다. 온라인상에 업로드 된, SNS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셀카와 같은 개인의 이미지를 선택하여 다시 필터링, 편집하고 화면으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관심과 함께 관계를 증명 받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과 이와 교차하는 타자의 시선을 중성적으로 그려낸다.
정고요나는 특히 자신의 일상을 사진처럼 기록하는 작업으로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2016년 개인전《기억의 목적》에서 처음 시도했던 < 라이브 캠 페인팅 Live Cam Painting > 시리즈는 CCTV, 웹캠, 셀프카메라 등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는 영상을 캔버스 혹은 OHP 필름 위에 프로젝션 하여 고정된 배경 위로 움직이는 인물들의 실루엣 변화를 실시간으로 그려내는 미디어 회화 작업이었다. 이는 쌍방향 소통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으로 일방적으로 통제된 회화적 결과물을 해체하려는 시도였다. 사회가 점점 디지털화 되고 인터넷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온라인을 통해 개인의 일상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관찰하는 현상에 관심을 둔 작가는 SNS에 업로드 된 가상 이미지가 내포한 동시대적 특성으로 자연스레 시선을 돌렸다.
SNS 활성화는 공적 공간에서 누구나 업로드 된 피사체의 사적이면서 조작된 이미지를 스파잉(spying) 할 수 있는 플랫폼을 열어주었다. 이로써 SNS를 통한 작가와 피사체와의 소통인 스파잉의 행위는 관음이라는 부정적 속성이 배제된 채 공공연히 수행과정을 거칠 수 있는 당위성을 획득하게 된다. 정고요나는 온라인 상에 업로드 된 이미지가 필터를 거치며 피사체 그 자체임과 동시에 타인을 의식한 되고 싶은(want to be) 혹은 보이고 싶은 선망의 이미지로 양가적 측면을 지니는 것을 포착한다. 정고요나는 자발적으로 타인과 공유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미지를 온라인상에서 선택한다. 각각의 이미지는 타자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하고 의도적으로 반영하여 ‘만들어 낸’ 개인적이지만 사적이지 않은 결과물이다. 개인에 의해 게재된 시각 이미지의 결과물은 ‘내가 어떻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지점에서 책략적으로 짜여 있지만 동시에 의도를 드러내길 원하지 않는, 애매모호함이 담긴 “교묘한 내숭”을 표방한다. 이러한 지극히 의도적으로 타자의 시선이라는 주관적인 검열을 거쳐 온라인상에 그리드로 넓게 펼쳐진 이미지들은 의식의 표면 아래 놓인 동시대의 삶의 방식과 이상향으로 귀결된다.
조정과 자체 검열의 기준을 통과하여 비로소 보이는 이미지는 ‘나’이면서 ‘내가 아닌’,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존재하는 이미지가 되어 가상과 실재 그리고 현실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지점을 형성하고, 여기에 작가의 ‘그리는’ 행위가 더해져 결국 객관적 텍스트로 치환된다. 즉 작가는 SNS 사진 같은 얇은 그리드로 플로팅(floating)하는 이미지를 서로 다른 시선을 드러내지 않는 붓질, 채도 낮은 냉랭한 감각으로 ‘그리는’ 행위로 수행함으로써 쌍방향으로 교차 편집된 동시대적 정서와 욕망을 읽어낸다. 이를 통해 급변한 언택트 시대에서의 회화적인 요소에 대한 예술적 탐구와 동시대적 실험을 시도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미지에 다시 한 번 필터를 덧씌워 화면으로 옮김으로써 “어쩌면 우리는 편집된 일상을 살고 온라인상에서 만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현대인의 삶에서 오는 고독함과 관계에 대한 욕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작가 노트에서)하는 의문을 품는다. 이로써 가상이 이미 우리 삶의 여기저기, 그리고 깊은 곳으로 들어와 현실이 채워줄 수 없는 위로와 자기만족, 그리고 향유를 주고 있음을 생각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