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yona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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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Shirts

오웅진
닿는다(tact)는 미신.
#Instagram 공개↔비공개
#Football 지구상에서 전쟁과 가장 유사한 스포츠
#Un-tact 라는 감미료에 관하여
몸이라니..
생각해보면 이만큼 고전의, 그러나 동시에 현재진행형으로 돌진하는 고통이 없다.
언택트un-tact라는 말이 종종 들린다. (조금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전세계에서 우리만 쓰는 이 단어는(옥스포 드 사전에 untouched와 비슷한 intact정도가 있다만..) 현재 우리의 불안과 간절함의 감정 같은 걸 똘똘 뭉 쳐 빚어낸 어떤 감미료 혹은 msg 덩어리 같다.
"무엇과 무엇이 닿을 수 있을까?"
시국과도 결부되어 시작된 고민이 '몸'까지 뻗었고 거기 멈춰 기획을 시작했다. 통신通信. 한자를 얉게 풀면 '통한다고 믿는 것'이다. SNS, 커뮤니케이션 등의 단어보다 앞서 탄생한 것을 감안하면 그 뜻이 약간 통찰 혹 은 절창絕唱 같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우리의 몸이 전쟁터BattleGround 일 수 있을까?
이번 전시명이기도 한 Red Shirts는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풋볼 용어로 본인의 신체 피지컬을 키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유급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스포츠 중 미식축구(이하 풋볼Football)를 전쟁과 가장 유사하다 고들 말한다. 조금 터프한(?) 신체접촉 뿐만 아니라 럭비에선 불가능한 단 한번의 전진 패스가 존재함으로써 공성전, 공중전의 영역까지 품는다. 풋볼을 전쟁에 비유하듯 NFL(National Football League)를 지구상 최강 의 피지컬 집단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신입생의 절반 가까이가 이 제도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이 종목이 탈인간급의 버거운 신체역량을 요구하는 탓도 있지만 그것이 단순히 대학 신입생이 되는 것을 넘어 사실상 '완전한 노출(露出)'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가령 8월 말에서 9월 초, 풋볼 새시즌이 시 작하는데 보통 금요일 고교, 토요일에 대학, 일요일에 프로의 경기를 중계하는데 최근 이 룰이 깨지는 추세에 있다. 대학 경기의 시청률이 프로를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트럼프가 기를 쓰고 대학 개강과 대면 수업 을 진행하려는 이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주인공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그게 불교용어라는 걸 곱씹어보면 노출露出이라는 단어엔 어떤 묘한 매력이 있 다. 그것은 우리가 적당히 맺고 끊으며 자신의 몸으로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연출 수단이기도 하다.
가령 인스타 공개↔비공개 전환이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건 약간 예측할 수 없는, 미지로부터 날아오는 럭비공의 타격감(打擊感)을 바탕으로 몸을 키우는 피지컬 트레이닝과 유사하다. 일정량의 감정이 흘러넘쳐서 스위치를 건드리면 전원이 툭하고 꺼져버리는, 그러다 다시 그 수위가 낮아지다 못해 마르 면 전원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이 패턴이 반복되면 마치 '사막'의 갈라진 바닥처럼 이상한 골이 생긴다. 물론 좋게 말하면 마치 가재가 몸집을 키우기 위해 껍질에 쌓이고 벗고를 반복하며 성장하는 것에 빗댈 수도 있겠다.
자신의 내비치는 것의 가장 상품화된 버전을 '자랑'이라고 한다면 자랑하는 건 곧 자신을 가장 즉각적으로 소 비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셀럽이 자주 허탈해질수 밖에 없는 건 그들이 파는 모든 게 일종의 '자랑'이기 때 문이다. 즉 그렇게 허탈해지는 스테레오 타입, 사실 그게 그들의 직업이다.
아이러니하게 내가 노출하고 자랑한 아이템들이 나를 좇거나 을러메는 부메랑이 되는 건 순식간이고 그런 의 미에서 오늘날 우리가 제 몸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스타에 뭔가 피드를 올렸다 지우고, 그것마저 수동으로 하기 귀찮아 스토리를 활용하고, 계정을 공개↔비공개 전환하는 모든 패턴들이 조 금 아프게 말하면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일종의 작은 틱(tic)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들은 앞서 얘기한 내용의 일부 혹은 전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가령 정고요나 작가(@goyona_jung_studio / 503호)의 경우 미디어에 의한 노출과 우리가 노출할 수 있는 요소들 중 신체, 취향 등의 속성을 둘러싼 개인의 양가적인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자신의 정체 감을 완성하는 동시에 갉아먹게 되는, SNS 상에 노출되는 다양한 정동적 요소들을 캔버스에 그려낸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콘텐츠 중 여럿이 그냥 CCTV 감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것을 얼마만큼 시청자들에 게 불편하지 않게 연출하느냐가 관찰 예능의 세련됨이고 보는 이들이 진짜 다른 이의 일상을 완전하게 엿보고 있다는 하이퍼리얼리즘의 판타지를 끝까지 깨지 않는 것, 그게 라이브 스트리밍, 혹은 Vlog의 퀄리티다.
BBC, HBO에서 만든 영드 는 SF적인 근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 베서니라는 인물이 등 장하는데 소녀는 리얼타임 페이스필터 없이는 타인과의 대화조차 힘겨워 한다. 사실 이는 교정해야할 장애가 아니다. 살갗에 덮힌 기관만을 신체로 인정하는 것 이것이 또 다른 폭력 혹은 아집일 수 있다. 선천적으로 몸 이 아픈 소녀에게 이는 또 다른 얼굴이자 신체의 확장이 될 수 있으며 오세애(@ohseae / 502호) 작가가 이 지점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신체 장기 시험 착장회’를 연다. 이것도 쇼룸이라면 일종의 쇼룸인 셈인데 평소 작가의 주 작업 중 하나인 인스타 필터리얼 매체를 활용하여 실시간으로 방문하는 관객들에게 네 개의 ‘신체 장기’ 필터를 착장해보는 ‘행복한’ 시간을 선물한다.
이정빈(@soojebie / 501호) 작가가 몸을 그려내기까지 많은 굴절 혹은 탈각脫却의 과정이 필요했다. 그가 여 성의 살갗과 외연적인 요소, 근육 등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선입견, 편향성에 대해 고민해 왔다. (사실 이는 특정 젠더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녀는 여성의 분만 과정을 그린 한 영국 작가의 그림이 선정성을 근거로 전시를 거부당한 일을 기억한다. 그럼 피부를 묘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형상을 추적할 수 없도록 근육을 그 리지 않는다면? 아니 그냥 뼈만 그린다면 괜찮아지는 걸까. 작가의 ‘해골’ 이미지는 그러나 단순히 반대급부의 집약체인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고유의 색감을 부여 받고 그 자체로도 결핍된 요소가 아닌 완전한 운동성을 가지고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 맺음을 시도한다.


Installation_Red Shirts_Uljiro Of